정세랑 작가의
맺는말에 보면 엄마의 희망사항과 작은 아버지의
비보가 소설의 모티브 역할을 했다고 쓰여있다.
심시선이 가버린 지 10년이 되었다. 가족들은
시선의 추도 10년을 기념하기 위해 하와이로 여행을 떠난다.
시선이 그토록 싫어하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…
가계도가 생각보다 복잡해서
이야기 서두에 그려진 가계도를 보려고
몇 번이나 페이지를 다시 넘겼는 지 모르겠다.
심시선은 예술가였다.
하와이 세탁소에서 일하는 젊은 동양인을
여러모로 활용한 또 한 명의 대예술가..
잘은 모르지만 그 시대 예술가로서의 삶,
여성으로서의 삶,
동양인으로서의 삶,
동양 여성 예술가로서의 삶을
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었다.
심시선의 삼대가
하와이에서 꺼내 보는 심시선과의
추억을 통해 각 인물의
입장과 지금을 사는 그대들의 삶도 함께
바라볼 수 있다.
독특한 전개와 인물들의
개성있는 디테일,
아주 속이 시원해지는 사이다같은
소설 속 심시선의 인터뷰에서 인용글
여성이여서
더 빛났어야 했더누대한민국의 딸 들 이야기를
꼭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.
늘 철쭉이 흔학 시시한 꽃이라고 생각했습니다. 봄이 와도 철쭉을 대단히 반기는 이는 없지 않나요? 그런데 어느 날 밤 산책을 나갔다가 송이째 떨어져 있는 흰 철쭉을 보았고, 지나가던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그 꽃을 비추는 순간 그것이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흰색이란 걸 깨달았습니다. 빛날 준비가 되어 있어서 거의 스스로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흰색요. 그것을 칠십대에야 깨달았으니, 늦어도 엄청 늦은 거지요.
여전히 깨닫지 못한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. 어떤 날은 바람 한 줄기만 불어도 태어나길 잘했다 싶고, 어떤 날은 묵은 괴로움 때문에 차차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싶습니다. 그러나 인간만이 그런 고민을 하겠지요. (......)
I always thought Royal Azaleas were ordinary, unremarkable flowers. Even in spring, does anyone truly look forward to Royal Azaleas? But one night, while taking a walk, I saw a white Royal Azalea that has fallen in its full bloom, and the moment the headlights of a passing car illuminated the flowers, I realized that they were the most beautiful white I had ever seen in my life.
A white that’s ready to shine itselt... I realized this in my seventies, so it was very late...
It makes me feel there is still so much I don’t understand. Some days, I wish I had been born simply to feel a breeze on my skin, while on other days, the old pain makes me wish I had never been born at all.
But only humans would wrestle with such thoughts.
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수준의 자해입니다. 아아, 이 사람 큰일났다, 싶을 땐 늦었고 곁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. 큰 회사에 다니고, 가업을 잇고, 대단한 돈을 거머쥐고, 다정한 반려인이나 귀여운 아이들을 얻고 나서도 무언가 안에서 그네들을 갉아먹습니다. 기생충이 먹을 게 없으면 내장을 파고들듯이요.
그러니 남는 질문은 이렇습니다. 자기 자식이 어떤 성품인지 다 아실 테니 재능의 있고 없고를 떠나, 하지 않으면 스스로 해칠 것 같습니까? 즐겁게 그리고 쓰고 노래하고 춤추는지, 하지 않으면 괴로워서 하는지 관찰하십시오. 특히 후자라면 더더욱 인생의 경로를 대신 그리려고 하지 마십시오. 그런 아이들을 움직이는 엔진은 다른 사람이 조작할 수 없습니다. 네, 다른 사람입니다. 부모도 결국 다른 사람입니다. 세상에대한 지나친 환상을 걷어내주시기야 해야겠지만, 가능성이 조금 번쩍대다 마는지 오래 타는지 저가 알아서 확인하도록 두십시오. -한국XXXXX부모연합 초청 강연(1984)에서
심시선 : 폭력성이나 비틀린 구석이 없는 상대와 좋은 섹스. 왜요? 할러미가 섹스라고 말하면 웃긴가?
질문자 : 선생님도 참. (웃음) 폭력성과 비틀린 구석이 없다는 건 너무 베이직 아닌가요?
심시선 : 베이직을 갖춘 사람이 오히려 드물다고 봅니다. 안쪽에 찌그러지고 뾰족한 철사가 있는 사람들, 배우자로든 비즈니스 파트너로든 아무데도 못 갖다 써요. 꼭 누군가를 해치니까.
......
우리가 인생에서 간절히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를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확률은 아주 낮지 않을까요?
원래도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, 본격적으로 읽게 된 것은 우윤이 아팠던 시기와 겹쳤다. 대학병원의 대기 시간은 길었고, 난정은 마음 붙일 곳이 필요했다. 아픈 아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비명을 지르고 싶어져서, 그러나 비명을 지룰 수 있는 성격은 아니어서 머리를 통째로 다른 세계에 담가야만 했다. 끝없이 읽는 것은 난정이 찾은 자기보호법이었다.
우윤이 낫고 나서도 읽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. 우윤의 병이 재발할까봐, 혹은 다른 나쁜 일들이 달을 덮칠까봐 긴장을 놓지 못했다.
……
낙관을 위해,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,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만한 게 없었다. 그렇게 가까스로 키워놓았더니 미국으로 날아가버렸지, 내 딸…난정은 우윤이 보고 싶어 내내 우는 대신 계속 읽었다. 읽고 읽었다. 소원을 비는 사람처럼 책 탑을 쌓았다. 딸이 남기고 간 빈 공간을 책으로 채웠다.
“너같이 많이 읽는 애는 언젠가 쓰게 된다.”
어느 날, 어쩌다가 그런 생각에 다다랐는지 심시선 여사자 난정에게(며느리)에게 말했던 것이다.
빛나는 재능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.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, 또는 그 모든 것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.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질리지 않는 것.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.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록 접근하는 것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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